9월 14일부터 10월 3일까지 중견 서양화가 이길혜씨의 솔로전을 개최한다. 지난 2013년 이후 9년만의 솔로전이다. 오랜 침묵을 깨고 돌아온 그녀는 예전 그대로이다. 평생의 작업에서 천착해온 그녀의 테마 실버라이닝이 구름처럼 부유한다.
그녀가 수십년 공들여온 ‘실버라이닝(silverlining)’ 연작들은 요새처럼 비가 자주 내리는 날씨의 먹구름의 가장자리 쪽으로 은은히 빛나는 은빛 테두리를 일컫는 말이다. 그녀가 견인하는 이 구름들은 고요하고 이들이 떠도는 배경은 청명하며 작가는 침착하고 관조적이다. 갤러리의 조명과 휜 벽에 함께 어우러져 둥실둥실 떠있는 구름들은 영적이고 초월적인 존재들이다. 지상 위 하늘로의 영적 여행을 떠나기 위해 풍경을 도입한 그녀의 작품세계에는 고요한 평화가 감돈다. 이렇듯 영적인 세계를 사상하는 이길혜 작가는 관람자를 평온하고 아름다운 피안의 세계로 안내한다. 우리가 구름을 자세히 관찰해 본지가 언제던가? 회색이 잔뜩 끼인 먹구름일지라도 그 가장자리는 뒤 편 멀리서 비추는 햇살로 빛나기 마련이다.
“Every cloud has a silverlining”이라는 말처럼 구름 뒤편은 항상 은빛으로 빛난다. 그녀의 실버라이닝은 누구에게나 비춰오는 긍정과 희망의 상징이며 그녀의 중추적 이미지이다. 그녀는 안료를 소중한 추억처럼 조심히 다룬다. 물성을 강조하기 위해 질료를 두드러지게 중첩하는 마띠에르를 거부하고 느릔 속도로 곱게 갈아 섞어 여러 빛깔을 캔버스 위에 침착하게 쌓아 올린다. 밑칠을 하고 그 위에 유채물감을 차곡차곡 쌓아 올려 각자의 색을 중첩시켜 하나의 통일된 색을 이룬다. 그렇게 뽀얗게 쌓인 질료 사이로 은빛 희망의 테두리가 은은하게 빛나고 있는 것이다. 작가가 이끄는 대로 무심코 유영하는 구름들은 과거의 추억과 시간, 상념, 복잡한 세상의 질척이고 구질구질한 그 모든 사연을 초월한다.
이제껏 작가가 그래왔듯이 바람 불면 부는 대로 흐르고 떠오르고 날아간다. 고요하고 조화로운 캔버스 안에 떠있는 여려겹의 실버라이닝들은 그 어떤 드라마틱한 구원이 아니라 우리의 삶과 함께 천천히 다가와 스며드는 참선적인 구원을 보여준다.